정당방위는 법정에서 가장 많이 주장되지만 실제로 인정받기는 극히 어려운 항변 중 하나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과거보다 유연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인정된 판례를 중심으로 정당방위 성립 요건과 실무상 쟁점을 살펴본다.
정당방위 성립을 위한 법적 요건
정당방위는 형법 제21조에 규정되어 있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여기서 핵심은 ‘현재성’, ‘부당성’, ‘상당성’ 세 가지 요건이다.
현재성은 침해가 임박했거나 진행 중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종료된 침해에 대한 보복이나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침해에 대한 예방적 공격은 인정되지 않는다. 부당성은 침해행위가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공격이 정당방위였다면 이에 대한 맞대응은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
가장 까다로운 요건은 상당성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먼저 때렸으니 나도 때렸다”는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도 포함된다. 하지만 반격의 정도가 침해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다면 과잉방위로 평가된다. 이 경계선을 판단하는 것이 실무상 가장 어려운 대목이다.
택시 승객 오인 사건 – 정당방위 인정 사례
대법원 99도943 판결은 정당방위가 인정된 대표적 사례다. 피고인이 약혼자를 태우고 운전 중이었는데, 술에 취한 피해자가 회사 직원의 차로 오인하고 차도로 뛰어나와 차를 세우고 타려고 했다. 말다툼이 벌어지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바지춤을 잡아당겨 찢었으며, 피고인과 피해자는 함께 넘어졌다.
이후 피고인은 넘어진 피해자의 배 위에 올라타 양손목을 잡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약 3분간 누르고 있었다. 원심은 이를 과잉방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의 의미는 방어행위가 반드시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깬 데 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눌러 제압한 행위는 분명 적극적이었지만, 경찰 도착까지 추가 침해를 막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조치로 평가받았다. 시간적으로도 3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고, 상해의 정도도 경미했다는 점이 고려됐다.
학원 강사 머리채 폭행 사건
최근 1심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학원 강사인 피고인에게 학부모 A가 항의하러 찾아왔고, 대화 중 피고인의 말투에 화가 난 A가 피고인의 얼굴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이를 방어하던 피고인도 A의 팔과 어깨를 수회 때려 상해를 입혔다.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했다. 판결 이유에서 “피고인에게 상대방이 머리채를 잡건 어찌하건 국가 또는 법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 아무 저항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부당한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소극적 저항수단으로서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이 판결은 그동안의 엄격한 해석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방어권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아직 1심 판결에 불과하고 대법원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향후 상급심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당방위가 부정된 사례 분석
반대로 정당방위가 부정된 사례를 통해 한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중 의붓아버지의 지속적 성폭력을 견디다 살해한 사건이 있다. 피고인은 의붓아버지로부터 강간당한 후 계속 성관계를 강요받아 왔고, 상피고인과 공모하여 범행을 준비했다.
피고인들은 술에 취해 잠든 피해자의 양팔을 눌러 제압한 후 깨워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식칼로 심장을 찔러 살해했다.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전 공모와 준비, 반항 불능 상태에서의 살해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할 때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은 피고인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가 부정됐다. 현재의 침해가 아니라 장래 침해에 대한 예방적 성격이 강했고, 방어행위의 수단과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이 얼마나 엄격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쌍방폭행 사건에서도 정당방위는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주고받은 폭행은 방위의사보다 공격의사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먼저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정당방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잉방위와 오상방위의 구별
정당방위와 혼동하기 쉬운 개념으로 과잉방위와 오상방위가 있다. 과잉방위는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를 말한다. 정당방위의 요건 중 상당성을 결여한 경우다. 형법 제21조 제2항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 경악, 흥분, 당황으로 인한 과잉방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오상방위는 정당방위의 전제사실을 착오로 인식한 경우다. 실제로는 부당한 침해가 없는데 있다고 오인하여 방어행위를 한 경우를 뜻한다. 고의가 조각되어 무죄가 되거나 과실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 구분 | 의미 | 법적 효과 |
|---|---|---|
| 정당방위 | 상당한 이유 있는 방위행위 | 위법성 조각, 무죄 |
| 과잉방위 | 정도를 초과한 방위행위 | 임의적 감경 또는 면제 |
| 오상방위 | 침해 존재를 착오 인식 | 고의 조각, 과실범 처벌 가능 |
실무에서는 정당방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과잉방위나 오상방위를 인정받아 형을 감경받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완전한 무죄를 받지 못하더라도 정상참작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먼저 맞았으면 무조건 정당방위인가?
아니다. 먼저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정당방위가 자동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침해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임박했어야 하고, 방어행위가 침해에 비해 사회통념상 상당한 정도여야 한다. 이미 폭행이 종료된 후 보복으로 때린 경우는 정당방위가 아니다. 또한 쌍방이 감정적으로 격해져 서로 폭행한 경우 방위의사보다 공격의사가 인정되어 쌍방폭행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당방위를 주장하려면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
상대방의 선제공격 사실, 방어행위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입증할 증거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 CCTV나 블랙박스 영상 ▲ 목격자 진술 ▲ 상해 부위와 정도를 보여주는 의료기록 ▲ 사건 전후 문자나 통화 내역 등이 도움이 된다. 특히 영상 증거는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 방어행위의 정도가 어느 수준이었는지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중요하다. 증거가 부족하면 진술에만 의존하게 되어 인정받기 어렵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민사상 손해배상도 면제되나?
형사상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자동으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은 별개의 절차이고 판단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형사재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됐다는 사실은 민사재판에서 유력한 참고자료가 된다. 민사법원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과실상계 등을 통해 일부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별도의 민사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