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이 사안은 단순한 법 조항 개정을 넘어, 표현의 자유와 명예 보호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어디에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과 국내 입법 논의를 정리해본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무엇인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규정된 범죄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사실’을 말했음에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경우는 형법 제307조 제2항으로 더 무겁게 처벌되지만, 제1항은 진실한 사실이라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렸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구조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입법 방식이며, 표현의 자유 제한 논란의 중심에 있다.
물론 형법 제310조는 공익성을 위한 면책 규정을 두고 있다. 사실이 진실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다. 하지만 이 ‘오로지’라는 표현 때문에 실제 적용은 매우 까다롭고, 공익과 사익의 경계는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예측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2015년 권고 내용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11월 3일 한국 정부의 제4차 보고서를 심의한 후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핵심은 명확했다. 한국의 명예훼손 법제가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부과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를 고려하라는 권고였다.
위원회는 특히 이 조항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나 성폭력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내부고발자들이 사실을 폭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권규약 제19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타인의 권리와 신용 존중,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위원회는 형사처벌이라는 강력한 제재 수단은 가장 심각한 수준의 명예훼손 사건에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진실을 말한 경우까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입법 논의와 정치권 움직임
유엔의 권고 이후에도 국내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명예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악의적인 사실 유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고민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2025년 들어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논의하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제시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은 오히려 증폭됐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신중한 사회적 논의 없이 당론으로 확정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까? 형사처벌을 민사 손해배상으로 전환하고, 공익제보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며, 법원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명예 침해에 대한 실질적 구제 수단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리
폐지 찬성 측은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는 구조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공익적 비판이나 감시 기능이 위축되고, 권력자나 유명인에 대한 비판이 소송 위협으로 막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명예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이라도 사생활 침해나 악의적 폭로가 가능해지면 개인의 인격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온라인 환경에서는 한 번 유포된 정보가 삭제되기 어렵고, 민사 소송만으로는 신속한 구제가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도 제기된다.
중간 입장도 있다. 형사처벌은 폐지하되, 민사상 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고 가처분 등 신속한 구제 수단을 정비하자는 의견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전환하거나, 공익성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아래 표는 주요 쟁점을 정리한 것이다.
| 구분 | 폐지 찬성 | 폐지 반대 |
|---|---|---|
| 핵심 논리 | 표현의 자유 보장, 공익 감시 기능 강화 | 명예 보호, 사생활 침해 방지 |
| 국제 기준 | 유엔 권고 수용 | 국내 실정 우선 |
| 대안 | 민사 손해배상 강화 | 형사처벌 유지 또는 완화 |
| 우려 지점 | 권력 비판 위축 | 악의적 폭로 증가 |
온라인 환경과 정보통신망법의 복잡성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형법뿐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에도 규정되어 있다. 온라인에서 명예를 훼손한 경우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가중처벌될 수 있으며, 최대 7년 징역까지 가능하다. 이는 형법보다 더 무거운 형량이다.
온라인 환경의 특성상 정보 확산 속도가 빠르고 피해 규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한 입법이지만, 역으로 표현의 자유를 더 강하게 제약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SNS나 커뮤니티에서의 발언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면서, 자기검열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 민사 손해배상 청구 ▲ 형사 고소 ▲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하나의 발언이 여러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 복잡한 구조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논의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 형법 제307조 제1항 – 사실적시 명예훼손, 3년 이하 징역
- 정보통신망법 제70조 – 온라인 명예훼손 가중처벌, 최대 7년 징역
- 형법 제310조 – 공익성 면책 조항, 엄격한 적용 기준
- 민법 제750조 – 불법행위 손해배상, 민사 구제 수단
자주 묻는 질문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 반드시 처벌받나
반드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310조에 따라 적시한 사실이 진실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처벌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익성 판단은 법원이 사후적으로 하므로, 고소 단계에서는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공익성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있나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판결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자유권규약 당사국으로서 규약상 권리를 존중하고 이행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 위원회의 권고는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국내법을 개선하라는 강력한 정치적·도덕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되면 명예 보호는 어떻게 하나
형사처벌이 폐지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여전히 가능하다. 오히려 민사 제도를 강화해 신속한 가처분이나 정정보도 청구, 손해배상액 현실화 등을 통해 실질적 구제 수단을 마련하자는 것이 폐지 찬성 측의 입장이다. 형사처벌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기고, 일반적인 명예 침해는 민사로 해결하자는 논리다.